출발준비
비가 오는 거야.
오호라!
입었던 바지를 벗고 리넨치마로 갈아입은 후, 양말을 신었어.
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이 원래는 두 켤레 있었는데, 한 켤레는 엄마 드렸지.
그래서, 지금은 주황색 양말 한 켤레만 갖고 있어.
레인부츠를 신으면 무릎까지 오기 때문에 살이 닿아서 불편해.
그런 이유로 레인부츠를 신을 때는 무릎까지 오는 양말이 필요해.
그런데, 어제 비가 올 것 같아 레인부츠를 신으면서 그 양말을 사용했어.
어쩔 수 없이 발목까지 오는 여름용 발목 양말을 신었어.
연두색 장우산을 펼쳐 들고 따다닥 따다닥 천에 닿는 빗방울 소리를 음악 소리 삼아 경쾌하게 걸었지.
골프장 옆을 지나며
그런데, 골프장 옆을 지나면서 그 울타리 너머로 복숭아가 달린 게 보이는 거야.
거의 13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중이야.
그 옆을 지날 때면, 벚꽃이 피고 지는 걸 봤는데, 그 꽃무리 속에 복숭아꽃도 피었던 거야.
그런데, 오늘 처음 복숭아를 발견한 거야.
어제는 주렁주렁 달린 포도를 발견하고, 오늘은 복숭아를 발견하다니!
왠지 복이 올 것 같지 않니?
해양경찰청 앞 횡단보도
해양경찰청을 지나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어.
저쪽으로 중년의 아저씨 두 명이 보이는 거야.
그중 한 명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땅 쪽으로 두는 거야!
왠지 '침'을 뱉는 모양새 같았어.
초록불이 들어왔어.
한걸음 또 한걸음 마침내 다음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어.
그 아저씨 들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야.
그곳은 바다와 접한 곳이기 때문에, 컨테이너들이 드나드는 곳이야.
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?
초록불로 바뀌었어.
평소 같은면 가방을 한 손으로 쥐고 냅다 달려서 그다음 횡단보도까지 한달음에 건너버리는데, 오늘은 비가 오고 한 손에는 우산까지 받치고 있었어.
마치 워킹하는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걸었어.
긴 횡단보도를 건너서 이제 작은 횡단보도 앞에 멈췄어.
그 아저씨 들은 계속 그 자리에 맴돌고 있는 거야.
그중 한 명이 마스크를 벗더니 고개를 숙이고 '침'을 뱉는 거야.
빨간불이 바뀌고,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그 아저씨들을 지나쳐 갔어.
포도송이
뭔가 허전한데!
어제의 그 울창했던 '포도송이'가 안 보이는 거야.
그냥 지나쳤나?
그냥 지나치기에는 '포도송이'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았었는데, 하룻밤 새 누군가 싹 베어버렸나?
스치는 인연
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않아.
어쩜 기억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지만, 크게 상관하지 않았어.
왜냐면, 가까운 내 주변 사람 이외에는 사람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.
내 귓가에 말소리가 들리는 거야.
고개를 돌려보니 오른쪽 라인에 중년의 여자가 내게 인사를 하는 거야.
일전에 탈의실에서 내 사물함 바로 옆에 그 여자가 서 있었거든.
번호가 잘 안 된다고 해서, 벽에 설치되어 있는 수화기에 말하면 사물함 문을 열어준다고 말해줬어.
샤워를 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서, '고마웠다고' 웃는 얼굴로 말하고 그렇게 지나쳐 갔어.
그 여인이 내게 오늘 인사를 하는 거야.
내게 말을 건네고 인사를 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야.
그런데, 그 여자가 순간 '용감하다'는 생각이 들더라.
경성대 사회체육센터에서의 불쾌했던 인간들을 경험하고, 볼리비아에서 내게 너무 거칠고 무례한 인간들을 만났거든.
그리고, 지금도 길거리 연극들이 진행되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이제는 새로운 벽이 생겼어.
아마도 '방어기제'가 하다 더 생성된 것 같아.
그 친절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유튜브를 통해 매일 접하는 작금[昨今]의 시대에 경각심이 생겼지만, 내게 말을 건넨 그 여인에게 냉정하게 선을 긋게 되지는 않더라.
그래서, 나도 같이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더 주고받았어.
그리고, 수영장을 나올 때,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지 뭐니?
탈의실에서
아주 건강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내가 지나갈 때마다 '한숨'을 쉬는 거야.
내 모친이 쉬는 한숨은 의미가 있지만, 타인이 쉬는 '한숨'은 내게 별 감흥이 없어. 하하
집으로
오늘은 자유형을 하면서 조금 속도를 냈지 뭐니!
그래서,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고 왔어. 잠이 솔솔 오더라.
버스를 내려 다이소에서 볼펜 하나를 구입하고 나오는데도 내게 덮인 그 잠이 채 걷어지지 않은 거야.
내 앞에서 다가오는 청년 두 명중 한 명이 '콜록' 기침소리를 내는 거야.
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제과점과 메가마트가 나란히 붙어 있어.
몇 년 만에 메가마트에 들어갔어.
8,900원
입구에 진열된 과일코너에는 수박이 세 덩어리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거야.
채 만 원도 하지 않는 수박을 보며 한 덩어리 사갈까 망설였지만, 집까지 들고 갈 엄두가 안나는 거야.
음료수 코너를 찾고 있는데, 내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'콜록' 기침소리를 내는 거야.
사이다와 콜라 묶음을 한 개 집어 들고, 수산물 코너에 갔어.
'참돔 두 마리'가 세일해서 11,500원 하는 거야.
지금 사서 말리면 9월 추석에 쓸 수 있을까?
3개월이나 남았는데, 싱싱해 보이는 '참돔'을 바라보며 체념했지 뭐니!
이웃 주민
웬만해서는 내가 사는 라인의 주민들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데, 오늘은 한 가족이 재활용품을 버리러 나오는 거야.
작은 아이들 둘이 있는 단란한 가족 같았어.
내 바로 옆을 지나면서, 아버지 되는 이가 말하는 거야.
"종이는 저쪽으로 내려가야지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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